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89)이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공표했다. 리카싱은 올해 5월 10일 연례 총회(주주총회)서 공식적으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리카싱의 공식 후계자는 현 CK허치슨 부회장이자 중국 최고 정치 자문기구인 CPPCC 상임위원인 장남 리짜쿼이(53)가 잇는다.
68년 간 세운 비즈니스 제국
리카싱은 68년 동안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둔 마이더스형 사업가다. 부동산, 통신, 미디어, 건설, 석유, AI, 소매 분야까지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해 성과를 내왔다.
리카싱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50년 22세 때다.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한 리카싱은 플라스틱 산업이 호황을 누릴거라 예상하고 제조회사 청쿵실업을 설립하며 창업자 대열에 선다. 리카싱은 플라스틱 조화를 제조하며 큰 돈을 벌게 된다.
조화사업이 상승일로를 달릴 때 리카싱은 다음 사업을 구상한다. 그가 차기 사업으로 결정한 것은 부동산. 홍콩인 사이에 동남아 이주 붐이 일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던 때다. 리카싱은 부동산 매입과 건물을 지으며 경제 안정화 이후를 노린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1970년 홍콩 경제가 살아나며 지대와 임대료 상승이 시작되자 회사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게된다. 이것이 현재의 청쿵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청쿵그룹은 1970년 이후 현재까지 홍콩의 주요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리카싱은 해외로 사업을 확장했다. 영국 항만기업 허치슨 왐포아와 캐나다 후스키 오일을 인수하고 호주, 유럽 및 미국에서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다. 아울러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자 중국에 투자해 사업기회를 잡았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권력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토지개발 등 인프라 사업에 집중해 부를 축적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리카싱의 선택은 실패하지 않았다. 스카이프, 페이스북, 아이폰에 도입된 지능형 개인 비서 시리, 웨어러블 디바이스, 수소 연료 전지 차량 등 IT와 친화경 분야에 투자했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알파고가 세간의 주목을 끌던 2017년에는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를 초빙해 AI 공부를 할 정도로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리카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시아에서 최대 부호가 되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리카싱의 순자산은 현재 354억 달러(한화 약 38조 원)에 이른다. 리카싱이 회장으로 있는 청쿵그룹 및 계열사는 50개국 이상에 진출해 있으며 약 31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에 앞장선 자선 사업가
리카싱은 자선 활동으로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0년 동아시아와 북미의 대학과 병원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데 이어 자선 단체와 함께 리카싱 자선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리카싱은 2004년 인도양 쓰나미, 2008년 쓰나미 지진, 2015년 네팔 지진 구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올해 7월 만 90세가 되는 리카싱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그룹 고문 역할과 자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카싱이 받게되는 고문료는 연간 5000위안(한화 약 85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후계자는 맏아들 리짜쿼이
리카싱의 은퇴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한 시진핑 주석과 관계가 원활치 않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시 주석이 집권한 이후, 리카싱은 청쿵그룹의 중국, 홍콩 자산을 꾸준히 줄여왔다. 대표적으로 홍콩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센트럴 타워를 51억5000만달러(한화 약 5조5000억 원)에 매각한 바 있다. 이러한 기류에 대해 중국 언론의 비판도 꾸준히 받아왔다. 회견서 관련 질문을 받은 리카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근거로 현재 중국 내륙서 7조 원 규모의 천연가스 프로젝트가 진행중임을 강조했다.
리카싱의 후계자로 지목된 리짜쿼이는 1985년 청쿵그룹에 합류해 CK 허치슨 전무 이사, CK 허치슨 홀딩스 부회장 및 CK에셋 부회장을 맡으며 부친을 보좌해왔다. 리카싱이 활달하고 친화적 성격인데 반해 리짜꿔이는 차분하고 수사가 적은 명료한 논법을 구사하는 인사다. 은퇴회견서 그룹의 미래와 관련된 질문에서조차 리카싱이 더 적극적이었고 리짜꿔이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모양새였다.
리짜쿼이는 청쿵의 대중국 사업 얼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최근 중국 최고 정치 자문기구인 중국 인민정치협의회(CPPCC) 13차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홍콩 개발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